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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 무슬림국가인 인도네시아는 1998년 수하르또의 이른바 ‘신질서’ 정권이 갑작스럽게 붕괴한 이후 민 주주의 이행이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신생민주주의 체제는 초기 국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특히 제도적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시민의 정치적 권리 보장과 민주주의 규범의 확산에는 취약했다. 더욱 이 현 조코위 정부의 출범 이후 민주적 제도 역시 여러 위협을 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인도네시아 민주화의 역사 를 간략하게 살펴본 뒤 2024년 치러질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발전에 어떠한 시사점 이 있는지 살펴본다.

    서론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이자 발리를 비롯한 관광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도네시아는 30년 넘는 수하르또(Suharto)의 권위주의 정권, 즉 신질서(Orde Baru)가 1998년 갑작스럽게 무너 진 이후 제도적인 면을 중심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이행 과정 초기 국내외의 우려에도 불 구하고 자유롭고 경쟁적인 선거의 주기적인 실시, 정당정치의 정착, 지방분권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인도네시아는 불과 십여년 만에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제도적으로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정착시켰다. 특히 2014년 중앙정치무대에 혜성같이 등장한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이하 조코위)의 대통령선거 승리는 견고하게 유지되어 오던 소수 엘리트의 카르텔 정치가 대중적 지지를 힘에 업은 인물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이정표였다. 그러나 2024년 임기가 종료되는 조코위 정부는 현재까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괄목한 성과 를 거둔 것과는 달리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정치적 결집,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비자율적(illiberal) 법률과 정책제정, 시 민사회의 저발전 등으로 인해 시민적·정치적 자유의 신장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견고하게 유지되어 오던 절차적·제도적 민주성이 퇴보되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기 때문이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개입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조코위의 맏 아들 기브란 라까부밍 라까(Gibran Rakabuming Raka, 이하 기브란)의 부통령 입후보 과정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절차적 결함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글은 민주화 이후 진행된 인 도네시아의 정치발전과정을 소개하면서, 2024년 2월 14일 치러질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 가 향후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정체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1. 동남아시아의 발칸반도에서 민주주의

    1945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인도네시아는 1955년 초대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이 슬람,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다양한 이념적 성향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국회(DPR: Dewan Perwakilan Rakyat)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독립선언 당시 급조되었던 임시헌법을 대 체할 제헌헌법의 내용, 특히 이슬람의 지위를 둘러싸고 각 정파 간 대립이 가속화되자 당시 수 까르노(Sukarno) 대통령은 1957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신의 지지세력만으로 국정을 운영 한 이른바 교도민주주의(guided democracy) 체제를 구성하였다. 이후 1965년 군내 공산주 의자 세력의 친위쿠데타 시도를 무력으로 진압한 수하르또 장군이 국정을 장악하면서 인도네 시아의 민주주의는 다시금 긴 침묵 속에 빠졌다. 1980년대 한국과 필리핀 등 주변 국가들의 민주화의 물결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오던 신질서체제를 무너뜨린 것은 1997년 동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였다. 갑작스런 자본유출 을 제어하지 못한 상황에서 생필품 구매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 여력이 사라지자 민심은 요동쳤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자카르타를 비롯한 도시지역을 중 심으로 확산되었다. 마침내 수하르또는 1998년 5월 대통령직을 부통령이었던 하비비(B. J. Habibie)에게 이양하면서 관제 여당인 골까르(Golkar)와 군부에 바탕을 둔 30년이 넘는 철권 통치를 마감하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진 인도네시아의 정치 여정의 시작은 험난했다. 아쩨(Aceh) 와 파푸아(Papua)에서 이어져 오던 분리주의 운동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종족과 종교간 갈등과 유혈사태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경제난으로 가뜩이나 불안했던 사회의 혼란은 가중되 었다. 이러한 와중에 일부는 조직화를 넘어 무장투쟁세력으로 발전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부상은 비슷한 시기 내전 끝에 여러 국가로 분리되었던 유고슬라비아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 는 우려로 이어졌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는 임시대통령 하비비 정부하에서 언론자유 확립, 정 치범 석방, 정당정치 규제장치 철폐 등 일련의 개혁조치를 통해 빠른 속도로 정치적 안정을 확 보했다. 이는 하비비의 의지도 작용했지만,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무슬림 단체들과 국제사회의 개혁요구를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정부의 힘이 강력하지 못했기 때문이 다. 이후 와히드(Abrurrahman Wahid), 메가와띠(Megawati Sukarnoputri),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 정부를 거치면서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정권교체와 대의정치제도가 확립되었다. 특히 2005년 30년 가까이 지속해오던 아쩨 분리주의자 운동이 종식된 것과 일 부 이슬람주의자들이 정당정치 참여를 통해 이념적 온건화를 이룬 점은 제도적 차원의 인도 네시아 민주주의 발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대표적인 민주주의 지수인 <민 주주의의 다양성(V-Dem)>에서 각각 민주주의의 제도와 작동원리의 수준을 측정하는 선거 민주주의(polyarchy)와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모두 단기간에 크게 상승했다, 특히 polyarchy의 경우 2000년을 기점으로 최소 기준인 0.6을 상회하였는데, 이는 민주화를 먼저 겪은 필리핀과 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안정적인 추이였다.

    2. 조코위의 등장과 예상치 못한 민주주의 역행

    2014년 대통령선거의 결과, 즉 조코위의 당선은 인도네시아 정치에 있어 몇 가지 큰 함의를 가졌다. 중부자바 솔로(Solo)의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가구업체를 운영하다 불과 10년 만에 솔로시장과 자카르타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된 조코위의 배경은 막대한 자금과 가문 의 명성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했던 여타 정치인들과는 크게 달랐다. 더욱이 수하르또의 사위 이자 권위주의 정권 당시 수많은 인권유린과 정치개입 의혹을 받고 있었던 전 특전사령관 쁘 라보워 수비안또(Prabowo Subianto)를 근소한 표 차(6.3%)로 꺾고 당선되었다는 점은 –적어 도 정치학자들에게는-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체제의 지속성을 입증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졌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시작한 조코위는 자신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고속도 로, 항만, 공항, 발전소 등 국토균형발전에 필수적인 대규모 인프라 조성사업을 진행함과 동시 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 교육지원, 직업훈련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였다. 특히 인도네시아 경제발전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왔던 파푸아를 비롯한 동부인도네시아 지역 에 대규모 예산을 투여했다. 이러한 조코위의 일련의 정책들은 더욱 넓은 지지층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2014년 대선 당시 조코위의 종교적 신실함에 많은 의혹을 (때로는 가짜 뉴스를) 생산했던 이슬람주의자 세력들의 불만은 여전히 존재했다.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 전후인 2016년 말과 2017년 초까지 진행되었던 정국 혼란은 이슬람 주의의 정치적 결집이 인도네시아 사회의 다원성을 약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거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고 있었으며, 조코 위의 정치적 동지였던 중국계 기독교인 바수끼 짜하야 뿌르나마(Basuki Tjahaja Purnama, 아 혹)가 선거 유세 도중 꾸란의 한 구절을 언급하며 자신의 지지를 호소하자, 이슬람주의자와 보 수 무슬림 단체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반대시위가 자카르타 시내에서 연이어 발생 했다. 아혹의 낙선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던 이슬람세력의 결집이 정권에 대한 반대로 확 산될 것을 우려한 조코위는 무슬림 단체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을 강화함과 동시에 국제사 회의 우려에도 진행된 아혹의 신성모독죄 위반 기소와 유죄판결에 대한 의견표명을 하지 않 았다. 이 와중에 쁘라보워가 이끌던 야당연합은 지방선거 폐지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헌법상 독립기구인 부패척결위원회(KPK)의 권한을 축소하는 등 민주주의 제도적 기반을 흔들었다. 1기 조코위 정부가 민주주의에 대한 외부세력의 도전에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면, 2019년 대선을 통해 출범한 2기 조코위 정부는 스스로 민주주의의 주요원칙을 약화시켰다. 반 아혹 시 위를 주도한 이슬람 율법학자 마루프 아민(Maruf Amin)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운 조코위는 선 거에서 또다시 패배한 쁘라보워를 국방부장관에 임명하는 등 대연정의 수립을 통해 정국의 안 정성 제고를 꾀했다. 성공적인 경제정책 시행을 통해 자신의 지지율을 70%대로 끌어올린 조 코위는 대통령령을 통해 ‘반헌법적’인 사회단체들을 강제해산 시키는 한편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들을 강력하게 진압했다. 또한,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실시를 위해 민선 지 자체장의 임기가 만료된 지역의 상당수의 임시 지자체장을 해당 지역에 주둔 중인 군부대장이 겸임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군의 정치개입 소지를 불러일으켰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조코위 가문의 이른바 정치적 왕조화(dynastization)는 특히 주목할 만하 다. 조코위의 맏아들인 기브란(Gibran Rakabuming Raka, 1987년생)과 사위 바비 나수찌온 (Bobby Nasution, 1991년생)은 2021년 지방선거에서 여당 인도네시아투쟁민주당(PDI-P) 의 공천을 받아 각각 조코위의 고향 솔로와 인도네시아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메단 (Medan)시의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조코위의 둘째 아들인 까에상 빵아렙(Kaesang Pangarep, 1994년생) 역시 2023년 조코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단결당(PSI)의 당수 로 취임했다. 문제는, 이들의 정치적 부상이 오랜 정당정치 경험이 아닌 사실상 아버지와 장인 의 후광에 힘입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기브란과 나수찌온 모두 정당정치에 진출하자마자 당선 되었으며, 인터넷 인플루언서로 인지도를 쌓은 까에상은 정계 진출을 선언한지 3일 만에 PSI 의 당수가 되었다. 정치적 왕조화가 민주적 제도의 책임성과 대표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다는 여러 연구를 고려한다면, 특히 2기 조코위 정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의 질적하락(<그림 1>참고)은 조코위 본인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될 2024 총선거

    2024년 2월 14일 실시될 1차 대통령선거 및 국회의원선거를 위해 인도네시아 정계는 2023 년 초부터 사실상 선거 체제에 들어갔다. 대통령선거의 경우 가장 높은 대중적 지지도를 받고 있던 국방부 장관 쁘라보워, 중부자바 주지사 간자르 쁘라노워(Ganjar Pranowo, 이하 간자르), 그리고 전 자카르타 주지사 아니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 이하 아니스)가 각각 입후보하 여 3파전으로 치러지게 되었다. 임기 말인 현재까지도 70%를 웃도는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 는 조코위는 물밑에서 개헌을 통한 3선 연임과 선거 연기를 통한 임기연장을 시도하였지만 여 의찮아 보이자 자신의 정책, 특히 수도이전에 반대하던 아니스를 배제하고 간자르와 쁘라보 워가 러닝메이트가 되어 함께 출마하는 막후 조정안을 제시하였지만 이마저도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여론조사에서 오랫동안 박빙이었던 쁘라보워와 간자르의 구애에도 조코위는 오랫동안 중립 을 유지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기브란이 부통령 후보 하마평에 오르기 시작한 2023년 하반기부터였다. 조코위와 간자르, 그리고 기브란이 소속되어 있는 PDI-P가 선거법상 대통령 후보 연령 하한선(만 40세)을 이유로 기브란의 출마를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쁘라보워 진영에서는 선거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여러 차례 신청하면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 다. 이에 2023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찬성 5대 반대 4로 만 40세가 넘지 않더라도 선출직 경 력이 있는 자에게는 대통령선거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문제는 캐스팅보트를 쥔 헌법재판소장 안와르 우스만(Anwar Usman)이 기브란의 고모부, 즉 조코위 의 매제라는 점이다. 판결 이후 논란이 확산하자 헌법재판소에서는 안와르가 이해관계자 충돌 과 외부 세력의 개입을 묵인했다는 점을 들어 그를 소장직에서 해임했지만, 판결 자체를 번복 하지는 않았다. 헌재가 자중지란에 빠진 와중에 기브란은 10월 23일 PDI-P 탈당과 동시에 쁘 라보워의 러닝메이트로 등록했다. 한편, 13개 정당이 참여하는 총선은 전국득표율 4%가 넘는 정당만이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데,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의 경우 PDI-P와 쁘라보워가 이끄는 위대한인도네시아행동당(Gerindra)가 각각 19.7%와 18.2%를 지지를 얻어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어 골까르 10.5%, 온건이슬람정당인 국민각성당(PKB)이 8.5%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정당일체감이 극히 낮은 인도네시아에서 정치인이 당적을 옮겨 입후보하는 일은 자연스럽기 까지 하다. 그러나 기브란의 입후보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민 주적 제도에 변형을 가했다는 점에서 그 중대성이 크다. 즉, 헌법재판소의 개입으로 인해 조코 위는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임기 이후에도 아들인 기브란에게 물려줄 수 있고, 쁘라보워는 간 자르와 아니스의 지지율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기브란이 출 마한 뒤 쁘라보워는 대선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2023년 상반기까지 지지율 1위를 유지하던 간자르는 아니스와 2위 경쟁을 할 처지에 놓였다. 이에 PDI-P 당수인 전대통령 메가 와띠는 (여전히 PDI-P 당원인) 조코위를 향해 과거 수하르또 권위주의 체제와 닮아간다고 정 면으로 비판했다. 만약 쁘라보워와 기브란이 2월 1차 선거, 혹은 6월 2차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인도네시아 민주 주의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다. 우선 예전보다 발언의 수위가 낮아졌지만 쁘 라보워는 여전히 강력한 법 집행을 통한 사회기강 확립과 더불어 외국인 투자의 제한을 비롯 한 민족주의적 경제정책을 선호하고 있으며, 수하르또 정권 당시 자신과 연루된 인권탄압 의 혹에 침묵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12월 12일 열린 제1차 대선 후보자토론에서 쁘라보워는 파 푸아의 분리주의 운동에 대한 대책으로 지역의 사회경제적 차별완화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다 른 후보자들과는 달리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관용 없는 진압을 주장한 바 있다. 1998년 수하 르또 정권 퇴진 운동을 주도했던 부디만 수쟛미꼬(Budiman Sudjatmiko)등 일부 진보 정치인 들이 최근 쁘라보워를 지지한 것도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