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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탈냉전 이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급속히 늘어났지만 10여 년이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민주주의 국가의 수가 감소하는 소위 ‘제3의 권위주의화 물결’ 현상이 발생하였다.아래의 그림 1-1에 잘 나타 나 있듯이 프리덤하우스가 분류한 자유국가(free country)만 보더라도 그 비율이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반면 비자유 국가(non-free country)의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민주주의 후퇴는 민주주의 체제가 혼합체제 혹은 권위주의 체제로 전환하 는 현상, 즉 민주주의 붕괴(democratic breakdown)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체 제 내에서 민주주의의 질이 퇴행하는 현상, 즉 민주적 후퇴(democratic regression) 등 두 가지 다른 유형의 권위주의화(autocratization)를 모두 포함한 다(Tomini & Wagemann 2018). 그런데 이 시기에 나타난 대부분의 민주주의 후퇴는 권위주의 체제로의 이행이 아니라 “덜 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 체제로 의 변화였다(Mechkova et al. 2017). 이는 거쉐브스키(Gerschewski 2021)가 러 시아, 터키, 베네수엘라와 같은 일부 국가들에서 정치체제 수준의 “권위주의화 (autocratization)”가 나타났지만 이를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볼 수는 없 다고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군부 쿠데타나 외국의 침공에 의한 권위주의화가 아니라 점진적인 “민주적 침해(democratic erosion)”가 제3의 권위주의화 물결 의 양식이며, 따라서 이를 근거로 “민주주의의 종말”을 말하기는 이르다는 주장 도 제기되었다(Lührmann & Lindberg 2019; Wunsch & Blanchard 2023).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원인으로는 다양한 요인들이 지목되었다. 예를 들어 카 우프만 외(Kaufman & Haggard 2019, 418)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원인을 크 게 두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였다: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제 약하는 사회적 양극화(social polarization) 및 체제의 기능장애(dysfunction) 그리고 엘리트 양극화(elite polarization)와 전간기 유럽처럼 “극단주의자의 선거 승리를 방지할 수 있는 정치제도의 실패.” 아울러 이들은 민주주의 후퇴의 경로를 1) 양극화된 계급 또는 정체성 균열에 의한 중도정치세력의 약화(양극화 로 인한 관용과 인내심 약화), 2) 독재자의 선거 승리가 의회를 지배하는 다수 파로 전환, 그리고 3) 행정부를 이용한 수평적 책임성 약화 등 세 단계를 거친 다고 보았다.7) 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의 원인에 관한 국내 연구가 많지는 않지만 전혀 없 는 것은 아니다. 남윤민(2021)은 경제적 불평등이 민주주의 후퇴에 미치는 영향 에 주목하고 불평등이 증가하면 재분배와 복지정책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여 권 위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민주화를 촉진할 수 있지만, 오히려 지배계층에게 재분 배 요구 수용에 대한 부담을 주어 이들이 억압정책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오 히려 민주화를 억제할 우려가 있다는 보익스(Boix 2003)나 불평등이 민주주의 공고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호울(Houle 2009)의 논의를 바탕으로 경제 적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그는 V-Dem의 민주주의 지수를 이용하여 1973년 이후 2019년까지 194개국의 패널자료를 분 석하고,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의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는 점을 경험 적으로 보여주었다.
2.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
프리덤하우스의 자유 지수(Freedom Index, 1~7: 1=자유, 7=비자유)를 살펴보 면 한국은 2012년 시민 자유(Civil Liberty)가 2점,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s)가 1점이었으나, 이듬해부터 후자는 2점으로 변경되었다. 자유 지수 총 점(0~100)은 이명박 정부 시기 86점을 유지하다가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 부터 매년 1점씩 하락하여 2016년에는 82점이 되었다. 아래의 그림 1-2에 나타 나 있듯이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84점으로 자유 지수가 일부 회복(표현의 자유, 정부기능 각 1점)하였으며, 이듬해인 2018년부터 2022년까지 83점을 유 지하고 있다(시민 자유-법치가 1점 하락, 2003-2023) 한국은 가장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공고화한 국가이지만, 이와 동시에 심각 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강우진 2013). 민주주의 연구 자들 사이에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나타난 민주주의 후퇴는 이명박 정 부를 시발로 박근혜 정부 시기에 정점에 이르렀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 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김용복 2010; 임혁백 2021; 최장집 2016; Boese et al. 2022; Gerschewski 2021; Haggard & You 2015; Laebens & Lührmann 2021).9) 예를 들어, 김용복(2010)은 이명박 정부 시기에 시민들의 집회를 금지 하거나,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 사 업을 졸속 강행한 것 외에도 미디어 관련법의 ‘날치기’ 처리, 용산 참사와 2009 년 쌍용차 파업의 강제 해산과 사법처리, 민간인에 대한 불법 사찰 등을 민주주의 퇴행의 근거로 제시하였다.박근혜 정부 시기에 대한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유종성 2014; 최 장집 2016). 최장집(2016, 415)은 이 시기 한국 민주주의가 “과거처럼 초헌법적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존 헌법 아래에서 공적 제도와 그것을 운영하는 방 법을 통해, 정치 체제 분류를 새롭게 해야 하는 위험 지대에 한 발짝 한 발짝 접근”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레벤스와 뤼어만(Laebens & Lührmann 2021)은 이명박 정부 시기 국정원 민간인(언론인) 사찰이 이루어지 는 등 민주주의가 후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운동에 대한 법적 제약과 야당 이 단일후보로 맞서지 못해 2012년 대선에서 이에 상응하는 제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결국 박근혜 정부 시기에 예술인에 대한 정부 지원 배제 프로그램 운영 등 또 다른 민주주의 후퇴로 이어졌다고 주장하였다.거쉐브스키 (Gerschewski 2021, 52) 또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기에 헝가리와 베 네수엘라의 “독재적 법률주의(autocratic legalism) 메카니즘”, 즉 “비자유주의적 인 목적으로 현행 법률의 점진적 전환(gradual conversion of existing laws for illiberal purposes)”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문재인 정부 시기 한국 민주주의의 현황에 대해서는 상 반된 해석이 제기되어왔다. 최장집(2020, 18, 19)은 제21대 총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화와 “강한” 국가에 통합된 “약한” 시민사회가 정당발전 을 지체시켰다는 점을 제기하였다. 그는 박근혜 퇴진으로 이어진 촛불시위에 동 원된 “진보적 시민운동”이 “진보적 정당”을 대신하여 문재인 정부를 성립시키 고 지지집단이 되면서 국가에 흡수되었으며, 이로 인해 “자율적 시민운동의 소 멸”이 초래되었다고 보았다. 아울러 그는 한국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시발점 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만들었지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적폐청산” 이 한국정치와 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임혁백(2021, 156)은 한국이 “촛불혁명”을 계기로 민주주 의를 회복하였다고 보았다. 비록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 하였지만, 그는 문재인 정부 시기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라고 단언하였다. 보이세 외(Boese et al. 2022) 또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2008-2016)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회복되었으며, 이를 민주주의 체제의 붕괴를 피하고 ‘붕괴 회복력(breakdown resilience)’을 보여준 세계적으로 대표 적인 사례로 보았다. 이처럼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지속 혹은 회복에 대한 대립된 해석은 정당과 시민 운동에 대한 이들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최장집 (2020)은 다원적 이익의 대표 체계와 정당 체계의 발전이 필요한데도 민주화 이후 ‘반정치’ 성향의 한국 시민운동이 정당과 시민의 단절을 심화시키고 정당 을 왜소화시켰으며, 정치의 중심이 제도 밖의 광장으로 이동하면서 심각한 정치 위기를 불러왔다고 보는 반면, 임혁백(2021)을 비롯하여 ‘광장 정치’를 중시하 는 이들은 시민운동 그 자체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동인이 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한편, 흥미롭게도 권혁용(2023, 43)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국면인 2016-17년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었지만, 이는 민주주의 퇴행이 아 니며, 정작 그 징후(행정부 권력증대, 반대당 괴롭히기, 허약한 국회 등)를 관찰 할 수 있는 것은 문재인-윤석열 정부 시기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시기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둘러싼 해석의 차이는 이 념적 차원에서 훨씬 확연하게 나타났다. 일부 보수적 성향의 연구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들의 이념적 성향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혹은 ‘친 북’ 성향이며 이들이 추진한 정책이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며 이를 근거로 한 국 민주주의가 후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김영호(2018, 171)는 문재 인 정부가 “한국의 좌파세력들이 교육, 정당, 종교, 노동, 문화, 언론, 법조 영역 에 침투하여 시민사회에서 좌파 헤게모니를 장악함으로써” 등장할 수 있었고 “합법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했다”며,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포 퓰리즘적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양승태(2020, 214)는 문재인 정부가 “허구와 위선의 역사의식”에 사로잡혀 “국가정체성의 위기를 조장하며, 급기야 민주주의마저 퇴행시키려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대중영합주의를 넘어 대중독재를 부추기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김학준(2021, 262) 또한 한국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근간을 형성한 기본적 가치인 ‘북한식 공산 독재체제에 대한 반대’와 ‘미국과의 동맹’,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 제원리 등에 비판적이거나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 친북한적・친중공 적 노선을 지지하는 세력이 존재해 있으며, 이 세력이 ‘좌파정권’의 중핵을 차 지하고 그 노선을 지향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한국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대립된 해석은 학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앞서 지적하였지만, 시민들은 이념적 성향에 따라 정부나 정 당이 보여주는 모습을 상이한 방식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하 여 비민주적 행위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가 이념적 성향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는 점에 주목한 크리슈나라잔(Krishnarajan 2023, 475)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는 시민들이 관용과 성찰의 부족, 정책 선호의 일치 때문에 비민주적 행위를 수용한다는 기존 민주주의 연구자들의 접근법은 일반 시민들이 민주주 의를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비민주적 행동을 “합리 화(rationalization)”하기 때문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시민들이 비 민주적 행동을 수용하는 것은 이를 비민주적이지만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기 때 문이라기보다 민주주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을 포함한 22개 국가에 대한 실험연구를 통해 좌파는 좌파대로 우파 는 우파대로 비민주적 행위를 민주적이라고 합리화(민주적 합리화, democratic rationalization)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그는 많은 이들이 주목하 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도전에는 “핵심적인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도 전”과 “포퓰리스트 행태” 외에도 민주적 규율과 규범이 아닌 정치적 관점에서 비민주적 행위를 이해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주장하였다.